태그 : 제2차세계대전

앨런 튜링

독일의 아르투르 슈르비우스 (Arthir Scherbius) 는 전기로 작동하는 암호화 기계인 에니그마 (Enigma) 를 개발하였다. 에니그마는 그 동작 방식이 상당히 기발하고 또한 극도로 복잡한 암호를 만들 수 있었으며 만약 기기가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갔다고 해도 상대의 암호를 해석하기가 엄청나게 어려운,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암호생성기였다. 이 때문에 당시 늘 암호 작전의 실패로 고심하던 독일군은 제2차 세계대전을 준비하면서 이 에니그마를 전격적으로 차용하게 되었고, 머지 않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비밀통신 수단을 보유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영국은 독일에 침공당한 폴란드의 첩보부로부터 에니그마와 이의 해독에 관련된 기술 등을 건네 받았고, 이를 기반으로 수학자, 언어학자, 고고학자, 체스 전문가를 비롯한 각계의 전문가들을 모아 본격적으로 암호 해독에 총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러한 다양한 전문가들 중 가장 두각을 드러냈던 인물이 바로 앨런 튜링 (Alan Turing) 이다. 튜링은 에니그마 기계의 구조에 의해 암호에 일정한 패턴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이러한 패턴을 분석하기 위해 필요한 기계인 봄브 (Bombe, 폴란드에서 만든 암호 해독기의 이름을 땄다) 를 설계했다. 이 기기는 독일군의 암호 메시지를 해독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고, 연합군이 2차대전 중 여러 지역에서 승리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또한 그는 봄브를 개선하여 새로운 암호 해독기를 만들어내었는데, 이것이 바로 (사실상) 세계 최고의 연산 컴퓨터인 콜로서스 (Colossus) 이다. 콜로서스는 높이가 3미터에 이르고 2400 여개의 진공관과 300개의 전기 릴레이 장치를 이용해서 초당 5천자의 암호문을 에니그마의 암호와 비교하여 일치하는지의 여부를 검사하는 식으로 동작하였다. 이 콜로서스가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좋은 예가 바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다. 블레츨리 암호해독팀은 콜로서스를 이용해 독일 잠수함에서 발신된 암호 전문을 해독하여 독일군이 유럽 상륙작전의 주요 목표를 노르망디가 아니라 '칼레' 로 예상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심지어는 프랑스 해안을 따라 집중 배치된 독일군의 상황을 상세한 그림으로 만들어 연합군 측에 제공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암호 해독은 비밀스러운 활동일 수밖에 없고, 때문에 브레츨리 암호해독팀의 활약은 2차대전이 끝난 이후에도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콜로서스 또한 세계 최초의 컴퓨터라는 명예를 자신보다 2년이나 늦게 태어난 에니악 (ENIAC) 에게 양보하고 말았다 (이러한 이야기는 30년에 가까운 침묵 끝에 비로소 1975년 영국 정부가 뒤늦게 밝힘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앨런 튜링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암호 해독 작업의 숨은 영웅이었고 현대 컴퓨터의 기초 원리를 제시하기까지 했지만, 전쟁이 끝나자 그는 인정을 받기는 커녕 파멸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그의 인생이 처참하게 마무리된 것은 그의 동성애적 기질 때문이었다.

그 당시의 영국은 동성애자들을 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매우 엄격했다. 앨런 튜링은 1952년 자신의 동성애자 파트너가 집에 있던 금품을 훔쳐간 것을 경찰에 신고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들통났고, 그러자 경찰은 오히려 그를 음란죄로 체포하고 말았다. 이에 따른 재판에서 튜링는 유죄 판결을 받았고, 구금형 대신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 주사를 맞게 되었다. 사실상의 화학적 거세를 당한 것이다. 지속적인 여성 호르몬의 투입으로 튜링은 발기 불능과 중추신경계 손상, 그리고 유방의 확대와 같은 치명적인 신체 변화와 이로 인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결국 1954년 6월 7일, 그는 시안화칼륨 (청산가리) 의 치사량을 정확히 계산한 뒤 계산량만큼을 사과에 주사하고 이를 베어먹어 자살하였다. 그의 옆에는 한 입 베어 먹은 채로 남겨진 사과 한 개, 그리고 메모 하나가 남겨져 있었다 - '사회가 나를 여자로 변하도록 강요했으므로, 나는 순수한 여자가 할 만한 방식으로 죽음을 택한다.'

by 마이커피 | 2008/09/03 11:54 | White Letter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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